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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기본개념

정릉 860*484

by 쵸코야 2022. 6. 14.

 

 

 

정릉
서울 성북구 정릉 2동에 있는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능은 조선을 건국한 이후 최초로 조성한 능으로 처음 정했던 곳은 한성부 서부인 황화방(皇華坊), 곧 지금의 정동이었다. 그러나 산역을 시작할 때 물이 솟아나와 지금의 정릉동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치고 이방원이 임금에 오르면서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은 수난의 길로 접어든다. 태종 5년인 1405년에 도성 안에 있는 정릉을 도성 밖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정부의 상소가 올라왔고, 능역의 이전과 축소에 관한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정릉이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진 것은 1409년(태종 9)이었다. 오로지 태조가 제8왕자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데 대한 태종의 사감에서였다. 원래의 능은 고려 공민왕의 능제를 따랐으므로 광대한 능역을 갖추고 있었지만 능을 옮기는 과정에서 대폭 축소되었다. 이때 남은 목재와 석재 일부는 태평관을 건립할 때 부속재로 사용했으며, 병풍석은 광통교를 건설할 때 쓰도록 했다.

태종은 능을 옮긴 지 한 달이 지나자 정자각을 헐고 석물을 모두 묻어 버리고 광교에 있던 흙다리가 무너지자 십이신상 등의 석물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능을 옮긴 뒤 수백 년간 정릉은 왕후의 능이라기보다는 주인 없는 무덤에 불과하였다. 그것을 보다 못한 왕후의 친정 후손이, 선조 때 국묘봉 사자로 균역 면제를 호소하면서 변계량이 지은 이장축문(移葬祝文)의 기록을 통해 그 위치를 확인했다. 그 뒤 현종 10년인 1669년에 송시열의 청으로 비로소 종묘에 배향하고 능묘로 봉심(奉審)하게 되었다. 그 뒤 이경석 등의 청으로 능을 수리하고 재실을 중건하여 수호군을 정해주기에 이르렀다. 능 관리를 위하여 영(令) 1원과 참봉 1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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