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집사나, 전세 살면 되지.” 한 경제지 특집 시리즈의 제목이다. 집값 하락 추세가 지속하면서 굳이 집을 사겠다는 의욕이 줄었고, 전세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그러나 전세 물건이 부족해서 성수기, 비수기를 가리지 않고 전세금이 계속 오르고 있다. 학군이나 교통 여건이 우월한 일부 아파트는 중형 아파트가 10억 원을 넘나드는 전세금을 형성하기도 한다. “미친 전세”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10억 가까운 큰돈을 집주인에게 맡긴 강심장을 가진 세입자들이 경제력 부족 때문에 집을 못 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돈의 크기야 다르지만, 전셋집을 구하기 힘들어하는 많은 중산층 가정들도 집 살 능력이 없지 않지만 불확실한 집값 전망 때문에 전세를 선호한다. 그야말로 “요즘 누가 집사나.” 하는 마음이다.
전세 물건이 줄어든 이유는 집주인 입장에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금 이자밖에 수입이 없는데, 그 이자는 집값을 온전히 은행에 넣을 때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전세를 놓으면서 집을 유지하는 것보다 집을 팔고 은행에 맡기는 게 더 낫다. 이론적으로, 전세금이 매매가보다 낮은 것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대 때문에 당장은 손해를 보면서도 전세를 놓는 것이다. 세입자들이 전세금이 높다고 또는 너무 빨리 오른다고 아우성치지만, 집주인들도 불쌍한 사정인 것은 마찬가지다. 집주인이 떼돈을 벌기 위해 전세금을 올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언젠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면 전세금은 매매가보다 좀 더 높아질 것이다. 전세금에 대한 이자로 각종 세금, 유지·보수비용, 감가상각 등을 모두 충족하고도 은행 이자만큼의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2011년 1월 기고한 “전세의 본질과 전망”을 참조)
집을 팔지 않고(또는 팔지 못하고) 셋집을 유지할 때, 목돈이 꼭 필요하지 않은 집주인들은 월세를 선호한다. 시중 은행의 정기예금 이자율이 연 3% 내외인 데 비해 월세를 놓으면 전·월세 전환율 6∼7%를 적용해서 비교적 많은 월세를 받기 때문이다. 이 비율을 적용해서 계산된 금액을 10으로 나누어 월세를 받는 관행 때문에 연간 이자 상당 수익률은 전환율보다 높다. 아파트 단지마다 전세 물건은 부족하고 월세 물건은 몇 달씩 세입자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월세 계약은 세입자에게 큰 부담이다. 전셋집이 워낙 귀하다 보니 집주인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보증금 인상 부분을 월세로 내는 수준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전·월세 계약 건수에 관한 유일한 통계인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확정일자를 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은 임대계약 중 보증부 월세를 포함하는 월세 계약의 비율은 다음과 같다. 2011년 1/4분기에 28.8%였는데, 2013년 2/4분기에는 33.5%로 늘었다. 이 통계에서 월세의 비중이 실제보다 낮게 반영된 것은 자명하다. 보증금이 작은 월세의 경우 굳이 확정일자를 받으러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월세 비중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속에서도 점점 더 많은 아파트 임대계약이 월세로 전환되는 것이 눈에 띈다. 원룸, 오피스텔, 다가구 주택 등 주로 중·저소득층 셋집은 이전부터 월세 의존도가 높았지만, 아파트는 전세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새로 월세에 살게 된 중산층 가정들이 월세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고, 이 목소리가 전·월세난에 대해 정부가 무슨 조치를 취하라는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요약하면, 집값은 내려가고, 전세금은 오르고, 월세 비중이 늘고 있는데, 중산층을 포함한 세입자들은 월세 부담을 버거워하고 있다. 이 추세가 일시적인 이상 현상일까, 아니면 주택시장이 새로운 여건에 맞추어 변해가는 진화과정일까? 만약 전자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상 현상을 교정해야겠지만, 후자라면 변화가 수반하는 불가피한 고통을 줄여주는 이상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상황을 진단하는 관건은 전세라는 임대차 계약 제도가 효용을 다하였느냐는 물음이다. 주택 시장이 만성적인 주택 부족 상황인가? 주택 가격이 계속 올라서 집주인이 임대료보다는 집값 상승 차익으로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 공식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아서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돈을 빌려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는가? 등의 질문에 모두 “그렇다”는 답이 전세 제도의 존립 기반이다.
현재와 미래의 주택시장 여건을 짚어보면 전세 제도의 기반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예상한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전세 물량이 점점 줄어서 전세금이 오르고 마침내는 매매가에 근접하거나 초과하는 수준까지 갈 것이다. “미친 전세”가 아니라 합리적인 시장의 반응이다. 이렇게 전세금이 오르다 보면 월세가 주택 임대차의 대세가 될 것이다. 월세 시장이 커지면서 전·월세 전환율이 낮아지겠지만, 매달 월세를 내고 사는 것은 여전히 세입자에게 큰 부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월수입의 1/4∼1/3을 임대료로 내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 방식임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주거비 부담을 하게 될 것이다.
전세 제도는 과거 여건하에서 세입자, 집주인, 정부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다.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집을 빌려 쓸 수 있었고, 집주인은 적은 돈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정부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백만 호의 임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 여건이 변했고, 아쉽게도 전세는 서서히 수명이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정부가 시행하거나 정치권이 검토하는 여러 제도는 많은 부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전세 세입자를 돕기 위한 전세금대출은 전세 수요를 늘려 전세금 상승을 부추긴다. 이 문제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추상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일선 중개업자들이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권하고 있는 문제이다. 더 나아가서 전세금 상한제를 도입한다든지, 집주인에 대한 조세 부담을 늘린다든지 하는 정책들은 전세의 수명을 크게 줄이는 어리석은 시도가 될 것이다. 손해를 보면서도 그나마 전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들이 아예 임대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세 제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집주인들이 좀 더 전셋집을 유지하도록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전세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보다는 월세 임차자 보호 및 지원제도를 조용히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제까지의 임차자 보호 및 지원제도는 대부분 전세 계약을 전제로 구상되었다. 월세로 전환되는 시장에서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연구와 제도정비가 필요하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손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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