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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두기/인문학

춘향전 판소리 이도령 춘향모 상봉

by 쵸코야 2013. 4. 28.

 

 

[PEOPLE 프로의 세계] 판소리 명창 남궁소소                                                          기사입력 2005-09-21 09:57

실력·소양 겸비, 국악계 ‘프리마돈나’

판소리 하나로 온갖 상을 휩쓸었다는 국악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드는 생각은 영화 <서편제>, 단 하나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리 소리’라는 판소리에 대해 무지한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닌 듯한 착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고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봤다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 아닌가 하는 자기최면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얕게 알고 있는, 아니 영화를 통해 본 판소리에 대한 지식이라고 해 봐야 ‘한의 정서’야말로 서양음악과 우리 소리를 확연히 구분지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한이 맺힌 소리의 완성을 위해 아버지가 딸의 눈을 멀게 하지 않았던가). 폭포수 소리를 넘어설 정도로 소리를 내 피를 토해내야 득음할 수 있다는 것(그나마 극적인 구성을 위한 과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다) 정도다. 적어도 판소리 명창 남궁소소씨(본명 남궁정애ㆍ44)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피를 정말 몇 사발 토해냈을 거야.”

고생 한 번 안 했을 법한 고운 외모를 간직한 채 한복을 차려입고 나타난 판소리 명창 남궁소소씨는 그것이 영화를 위해 꾸며낸 장면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림프선이 부어서 병원을 5~6년은 다녔으니까 말 다한 게지. 어려서부터 소리를 시작했거든.”

무협지에서 본 이름 남궁소소를 예명으로 썼다고 밝힐 정도로 가식 없는 모습의 그녀는 소리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겨우 7살이었을 때 김제국악원에 입학, 소리와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그러니 판소리의 완성이 그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 알았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저 신동 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 열심히 했고 14살 때 동편제에 뿌리를 둔 판소리의 대가 정권진 선생을 만났다. 정선생에게 판소리를 사사하면서 많이 혼났고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잘한다는 소리는 듣기 좋았다.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국립창극단에도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한 번에 붙었다. 입단하자마자 주연을 꿰찬 것은 또 어떤가. <선화공주>를 창극으로 올리면 공주 역이 그녀의 몫이었고 <심청가>를 공연할 때면 심청이 또 그녀의 역할이 됐다. 그녀는 판소리로 전국 주요 경연대회의 상이라는 상은 거의 휩쓸었다. 86년에는 남원 전국명창대회 판소리부문 일반부에서 대상을, 87년 동아콩쿠르에서는 금상을 받았다. 90년에 있었던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부문에서 또다시 장원을 했고 2003년에 있었던 박동진 판소리 명창대회에서는 명창부 대상을 받았다. 창극단 활동을 그만둔 후에는 학문에 눈을 돌렸다. 26살 되던 해에 뒤늦게 중앙대학교 음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내친김에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여기까지 듣곤 “힘들었다”는 그녀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으로 오늘날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닐까. 순간 수많은 사연을 되새겨 보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바빠졌다.

“아마 내가 똑같은 양의 에너지를 다른 분야에서 쏟았다면 박사학위를 몇 개쯤은 받았을 거야.” 자신은 노력파라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아버지가 못 이룬 소리꾼의 한을 나를 통해 풀고자 하셨는지 많이 힘들게 하셨지. 오죽하면 어머니가 ‘당신이 죽어야 딸이 산다’는 말을 했을 정도니까.”

산림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소리에 대한 열정은 취미 수준을 넘었다. 한때 아버지와 동문수학한 조상현 명창은 지금도 그녀를 만나면 “네 아버지 목소리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소리”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건넨다고 했다. “아버지가 힘들게 했다”는 그녀의 말은 결국 “아버지 덕분에 오늘날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 감사의 뜻을 담은 그녀만의 독특한 전달방식이었던 셈이다.

남궁소소씨가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국악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었다.

“국악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 기생이라고 하거나 남사당패라고 해. 그나마 기자 양반이 봤다는 영화 <서편제> 이후로는 많이 달라졌지.”

그녀는 이를 두고 ‘소리의 고단함’이라고 표현했다. “해외에서 무대에 서면 외국인들은 한국의 소리에 기립박수를 보내주는데 오히려 국내에서는 민족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 같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에 비하면 내 목소리는 100분의 1에도 못미친다”며 부친 자랑인지 자신의 자랑인지 알 듯 말 듯한 말을 이내 다시 꺼냈다. 이를 듣고 있노라니 오히려 유전적 요인으로 영화를 이룬 사람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다. “내가 타고난 재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흥을 돋우는 것”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대중 앞에서 애환과 슬픔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재주는 비상한 것 같긴 해요. 아마 국악인이 되지 않았다면 무속인이 됐을지도 몰라.”

한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미쳐야 한다는 말은 과연 명언이었다. 이 말이 이때처럼 실감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그녀는 현재 판소리 인간문화재 5호 오정숙 선생의 이수자다. 아무리 기자가 국악에 문외한이라지만 이토록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인물에 대해 이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었을까. 이유인즉 지난 10년간 그녀는 대학교와 문화센터, 또 자신이 운영하는 연구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주력해 왔다.

“어려서 일찍이 성공을 맛보다 보니 겸손을 배울 새가 없었어. 그냥 노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그래도 그게 전화위복이 된 거지. 지난 10년이 나의 인격적인 성숙을 위한 값진 시간이었으니까.”

소리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었던 아버지는 10대 때 세상을 떠났다. 매니저 역할을 하던 아버지가 없으니 누구 하나 따끔하게 충고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21살에 창극단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고개를 숙일 줄 몰랐으니 선배들이 내가 얼마나 미워 보였겠느냐”며 특유의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후학양성에 10년이나 매달린 것은 아무래도 그녀의 의지다. 사람들이 국악을 왜 이리 안 알아주느냐며 사회를 탓하기보다 국악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로 활동 중인 남궁소소씨는 90년대 중반부터 2003년까지는 고려대와 경기대 등에 출강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남궁판소리연구원’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판소리, 사물놀이는 물론 입시지도까지 다양한 강의를 맡고 있다.

이렇게 후학을 양성하고 내공을 쌓는 동안 그녀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내년부터 시작해 5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판소리 완창무대를 갖겠다는 게 그녀의 현재 꿈이다. 첫 작품으로는 ‘춘향가’를 선택했다.

“나라가 부흥하려면 문화가 커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외래문화가 아닌 우리 문화의 풍토 조성이 돼야지. 내가 실력을 더 쌓아서 그 선두에 서고 싶어.”

국악이 온 국민에게 와 닿는 소리로 보급되고 호응을 얻는 소리가 되도록 하겠다는 그 첫 번째 각오가 완창무대인 것.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그녀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제자들을 가르친다는 방에는 동양화 몇 점과 그녀의 화려한 경력을 증명하는 상장들, 그리고 북과 장구로 채워져 있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을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사철가)

귀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는 남궁소소씨의 노래가 시작됐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많은 상장으로도, 동양화로도 다 못 채운 넓은 방안을 가득 채워내는 힘이 있었다.

약력 : 1961년생. 67년 판소리 입문. 74년 인간문화재 5호 정권진 선생 사사. 81년 국립창극단 단원. 86년 남원 전국명창대회 판소리부문 일반부 대상 수상. 87년 동아일보 주최 동아콩쿠르 금상 수상. 90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부문 장원 수상. 92년 중앙대 음대 국악과 졸업. 96년 동대학원 국악과 졸업. 2005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판소리 인간문화재 5호 오정숙 선생 이수자

 

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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